함께 만드는 더 나은 미래
성인명 | 토마스아퀴나스(Thomas Aquina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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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 1월 28일 |
성인구분 | 성인 |
신분 | 수도자, 신학자, 교회학자 |
활동지역 | 이탈리아, 프랑스 |
활동연도 | 1224/1225-1274년 |
소개 |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앙과 이성, 계시된 진리와 인간 지식이 조화를 이루며 연속적인 통일성을 갖고 있음을 그의 저술을 통하여 밝혀주었다. 그의 미완성 대작인 "신학대전(神學大全)"은 현대 가톨릭 신학의 뿌리로 받아들여질 만큼 위대한 신학 사상을 담고 있다. 그는 자연 질서가 하느님에게서 왔음을 알고 이성을 하느님의 귀중한 선물로 이해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교 최대의 신학자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지성과 성덕의 금자탑으로 칭송받고 있다. 교회는 그를 모든 대학교와 대학 그리고 학교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고, 그에게 붙여진 칭호는 '보편적 박사' 또는 '천사적 박사'이다. |
성인명 | 필립보 네리 (Filippo Ner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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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 5월 26일 |
성인구분 | 성인 |
신분 | 신부, 설립자 |
활동지역 | - |
활동연도 | 1515년 - 1595년 |
소개 | 이탈리아 중부 피렌체태생인 성 필립보 네리는 산마르코의 도미니코 회원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18세 때에 그는 산제르마노로 가서 사업 경력을 쌓으려고 노력했으나, 자신의 뜻과는 달리 신비체험을 하게 되면서 수도생활로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 그는 1533년에 로마로 갔으며, 철학과 신학을 3년 동안 공부하였다. 이때부터 필립보 네리는 길거리나 시장바닥에서 로마인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했는데, 신앙생활이 극히 미온적이었던 로마인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이후 성 필리보 네리는 어려운 처지의 순례자들을 사목하기 위하여 ‘삼위일체 형제회'를 설립하였고, 이것을 통해 수많은 개종자를 얻는 일에서뿐만 아니라, 자신을 도와줄 사제들을 확보하는 일에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1564년에 필립보 네리는 소년과 남자들을 위한 신심 단체인 오라토리오회(Oratorians)를 창설하였다. 그는 '로마의 사도'로 알려졌고, 교황과 추기경 심지어는 권력자들과 일반 시민들로부터도 큰 존경을 받았다. 그는 뛰어난 영적 지혜와 환시를 통하여 부자와 가난한 자, 권력자와 힘없는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도와주었는데 특히 그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1593년에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장상직을 사임하였으며, 1622년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로부터 시성되었다. |
성인명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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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 - |
성인구분 | - |
신분 | - |
활동지역 | - |
활동연도 | - |
소개 | 이 바오로 도서관은 천주교 대구대교구 제8대 교구장 이문희 바오로 대주교(1935년 - )를 기념하는 도서관이다. 이 바오로 대주교는 1972년 천주교 대구대교구 보좌주교로 서품된 이후, 1981년-1986년 ; 1990년-1991년; 1995년-2001년 학교법인 선목학원 이사장을 역임하면서 우리 학교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1986년 천주교 대구대교구 교구장에 착좌한 후 21년 동안 복음화사업에 헌신하고, 2007년 은퇴하였다. |
성인명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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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 - |
성인구분 | - |
신분 | - |
활동지역 | - |
활동연도 | - |
소개 | 우리 학교 성당 St. Florian Church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제1대 교구장인 드망즈 플로리아노(Florian Demange, 한국명 : 안세화 安世華) 주교(1911년 - 1938년)를 기념하는 성당이다. 안세화 주교는 1875년 4월 25일 프랑스 알사스주에서 출생하였으며 1898년 6월 파리외방전교회 신학대학 졸업과 함께 사제서품을 받았다. 1898년 10월 서울로 파견된 이후 경상남도 부산 지방 포교를 담당하였고, 신학교수를 역임하던 중 1911년 4월 8일 천주교 대구교구 교구장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는 1914년 현 대구가톨릭대학교의 전신인 성유스티노 신학교를 설립하였다 |
성인명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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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 - |
성인구분 | - |
신분 | - |
활동지역 | - |
활동연도 | - |
소개 | 우리 대학 연구기관들이 입주해있는 이 건물은 천주교 대구대교구 제9대 교구장인 최영수 요한 대주교(1942년 - 2009년)의 이름을 따라 최요한관으로 명명하였다. 최요한 대주교는 2001년 주교 서품, 2001년-2007년 천주교 대구대교구 총대리, 2001년-2009년 학교법인 선목학원 이사장을 역임하였고, 2007년 천주교 대구대교구 제9대 교구장에 착좌, 2009년 선종하였다. 이 건물은 2004년 최요한 대주교께서 이사장에 재임할 당시 손수 축복한 건물이다. |
성인명 | 토마스 모어(Thomas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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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 6월 22일 |
성인구분 | 성인 |
신분 | 평신도, 인본주의자, 순교자 |
활동지역 | 영국 |
활동연도 | 1477-1535년 |
소개 | 법률가의 수호자인 성 토마스 모어는 당대 최고 석학으로서 이단을 반대하는 논문과 신심 서적 등을 저술하였다. 영국의 재상이었던 성 토마스 모어는 헨리 8세 국왕의 이혼 허가와 교회를 반박하는 서류에 서명을 거부하고 재상직을 사임하였다. 얼마 후 또다시 왕위계승 문서에 서명을 거부함으로써 불의한 왕과 정면으로 맞서게 된 그는 국왕의 종이기 전에 먼저 하느님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1535년 단두대 위에서 참수, 순교하였다. |
성인명 | 라이문도(Raymu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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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 1월 7일 |
성인구분 | 성인 |
신분 | 수도회 총장, 신부 |
활동지역 | 스페인, 이탈리아 |
활동연도 | 1175-1275년 |
소개 | 성 라이문도는 스페인 바르셀로나(Barcelona)와 이탈리아 볼로냐(Bologna)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30대 초반에 교회법과 민법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교황의 명으로 교회법전을 편찬하였으며 수도자로서 모범적인 삶과 설교로 하느님을 증거하였다. 그는 위대한 교회법 학자였고 동방언어를 가르치는 교육센터를 세워 교육자를 길러 냈다. 그는 교회법 학자들의 수호성인이다. |
성인명 | 비토(Vit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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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 6월 15일 |
성인구분 | 성인 |
신분 | 순교자 |
활동지역 | 이탈리아 |
활동연도 | +300년경 |
소개 | 성 비토는 시칠리아의 어느 원로원 의원의 외아들로서 12세 때에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하였다. 그의 개종과 그가 행한 기적들이 시칠리아의 총독 발레리아누스에게까지 알려지자, 총독은 그를 불러 신앙을 포기하도록 종용하였지만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는 로마에서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아들을 악령에게서 구해주었지만 우상에게 제물 바치기를 거절한데 대하여 마술로 속인다는 죄명으로 갖가지 고문을 당하였다. 그러던 중 끔찍한 지진에 의하여 도시와 신전이 무너졌을 때, 한 천사가 성 비토와 동료들을 루카니아로 인도하였고 그들은 그곳에서 조용히 삶을 마감하였다고 전한다. 성 비토는 간질병환자와 소아병자들의 수호성인이며 연극인들과 곡예사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
성인명 | 예로니모(Jero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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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 9월 30일 |
성인구분 | 성인 |
신분 | 신부, 교회학자, 성서학자 |
활동지역 | 이스라엘, 프랑스, 이탈리아, 터키 |
활동연도 | 347-419년 |
소개 | 성 예로니모는 라틴어와 희랍어는 물론 고대 언어에 대한 뛰어난 지식과 연구로 명성을 날린 분으로 성서학자와 교회박사로 공경 받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에 대해 “일찍이 예로니모가 무엇을 모르는가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예수님의 탄생지로 믿어지는 동굴이 있는 베틀레헴 가까운 곳에 수도원을 세워 그곳에서 34년 동안 성서 번역에 몰두하였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히브리어와 희랍어로 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불가타(Vulgata)본을 완성한 일이다. |
성인명 | 요한 보스코(John Bosc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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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 1월 31일 |
성인구분 | 성인 |
신분 | 신부, 증거자, 설립자 |
활동지역 | 이탈리아 |
활동연도 | 1815-1888년 |
소개 | 성 요한 보스코는 1841년 사제로 서품된 뒤 가난한 젊은이들의 직업 교육에 헌신하였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전문적인 능력과 기술을 가르치면서 그리스도의 삶을 그들의 인생의 목적으로 삼을 수 있는 신앙을 심어 주었다. 이 가난한 젊은이들의 모임이 전 세계적으로 퍼져 살레지오수도회가 된다. 교회는 성 요한 보스코를 19세기의 가장 훌륭한 교육자로 손꼽고 있다. 그는 정치적 문제에까지 탁월한 조언을 했으며 교육 부문에 100여권의 저서를 남길 정도로 문필가로서도 이름이 높았다. |
성인명 | 야고보(Ja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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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 7월 25일 |
성인구분 | 성인 |
신분 | 사도, 순교자 |
활동지역 | 이스라엘 |
활동연도 | +44년 |
소개 | 성 야고보 사도는 제베데오의 아들이며, 요한은 그의 동생이다. 이들 형제는 자기 어머니와 함께 예수께 와서 "주님의 나라가 서면 이 두 아들을 하나는 주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하고 청했던 장본인들이다. 또한 '천둥의 아들들'이란 별명을 얻었으며, 예수께서 사마리아에서 냉대를 받자, "하늘에서 불을 내려오게 하여 이 족속들을 태워버리면 어떻겠습니까?"하고 말했던 인물들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는 기적을 비롯하여 예수의 영광스러운 변모, 게세마니 동산의 기도 등등 중요한 자리에 함께 있었다. 야고보 사도는 헤로데 아그리바 1세에 의해 예루살렘에서 참수당함으로써 사도로서는 첫 번째 순교자로 공경을 받는다. |
성인명 | 마태오(Matthe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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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 9월 21일 |
성인구분 | 성인 |
신분 | 사도, 복음사가, 순교자 |
활동지역 | 이스라엘 |
활동연도 | +1세기경 |
소개 | 성 마태오가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는 로마의 권력을 등에 업고 자기 동족으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이는 세금징수원이었다. 그는 80-90년 사이 마태오 복음서를 아라메아어로 기록한 저자로서 유다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였다. 성 마태오는 예수께서 부르러 오셨을 때 자기가 죄인들 중의 한 사람임을 인정하는데 아주 정직했다. 성 마태오는 은행원과 장부 기장자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
성인명 | 마티아(Matthia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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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 5월 14일 |
성인구분 | 성인 |
신분 | 사도, 순교자 |
활동지역 | 터키, 이집트 |
활동연도 | +1세기경 |
소개 | 기술자의 주보성인인 성 마티아는 예수님의 열두 사도 중 유다의 배반 및 죽음으로 비어 있던 자리를 채우기 위해 예수님의 죽음 후 사도로 선출된 제자이다. 열 두 사도중 하나로 선출된 사실 이외에 그에 관해 많이 알려진 바는 없으나 성 마티아는 예수님께서 파견하였던 72명의 제자가운데 하나였다고 한다. |
성인명 | 도미니코(Domini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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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 8월 8일 |
성인구분 | 성인 |
신분 | 신부, 설립자 |
활동지역 |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
활동연도 | 1170-1221년 |
소개 | 성 도미니코는 1214년 여섯 명의 동료들과 함께 알비(Albi)파 이단의 회개를 위하여 순회 설교를 시작하였다. 후에 그의 이름을 딴 도미니코 수도회는 교황의 인준을 받아 복음서의 말씀에 따라 설교하는 일을 주된 활동으로 삼은 ‘설교자회’로서 공식 출범하였다. 이 수도회는 지성적인 생활과 대중들의 요구를 잘 조화시켜 회개운동을 꾸준히 전개하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성 도미니코는 1234년 교황 그레고리오 9세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천문학자의 수호성인이다. |
성인명 | 이시도로(Isid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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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 5월 15일 |
성인구분 | 성인 |
신분 | 농부, 평신도 |
활동지역 | 스페인 |
활동연도 | 1070-1130년 |
소개 | 성 이시도르는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태어났고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신심이 매우 깊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큰 사랑과 동물들을 보살피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또한 성인은 작은 것이라도 가난한 이들과 나누려 했으며 그들을 위해 많은 기적을 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농부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 받고 있다. |
성인명 | 다미아노(Dami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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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 9월 26일 |
성인구분 | 성인 |
신분 | 의사, 순교자 |
활동지역 | 이탈리아 |
활동연도 | +303년? |
소개 | 전승에 따르면 성 고스마와 성 다미아노는 아라비아 출신으로 쌍둥이 형제인데, 시리아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가 되었으나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해 돈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청렴한 사람들’로 불리며 존경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열렬한 그리스도교 신자였던 두 형제는 박해가 일어나자 칠리치아의 집정관 앞으로 끌려가 고문을 받다가 끝내는 참수 순교하였다. 이 두 형제의 순교 이후 많은 기적이 일어났으며 또한 그들의 숭고한 신앙 정신과 명의의 신념을 증명하는 이적들이 자주 일어남으로써 이분들에 대한 공경이 널리 전파되었다. 중세기에 무역이 활발한 도시에 전염병이 창궐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자 사람들이 두 분의 도움을 간청하였다고 한다. 성 고스마와 성 다미아노는 성 루가 다음으로 꼽히는 의사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
성인명 | 토마스(Thoma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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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 7월 3일 |
성인구분 | 성인 |
신분 | 사도, 순교자 |
활동지역 | 이란, 인도 |
활동연도 | +1세기경 |
소개 | 토마스 사도는 처음에 주님의 부활을 불신한 제자이지만 그것을 선의로 해석하면 모든 일에 확인과 검증을 요구하는 철저한 성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나는 내 손으로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직접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서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했다. 여드레 뒤에 드디어 주님이 나타나시어 토마스 사도를 향해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으라" 하셨다. 토마스 사도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하고 고백하였다. 성 토마스는 인도로 가서 복음전파를 하다가 오늘날의 인도 남부의 마드라스 지방 마이라푸 근교에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
성인명 | 마르타(Marth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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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 7월 29일 |
성인구분 | 성녀 |
신분 | 신약인물, 동정녀 |
활동지역 | 이스라엘, 프랑스 |
활동연도 | +1세기경 |
소개 | 마르타 성녀는 라자로와 마리아의 누이로서 베타니아에 살았으며, 예수님이 그들의 집을 자주 방문하신 것으로 볼 때 가깝게 지낸 친구 사이로 보인다. 성녀 마르타는 활동적인 여성인 듯하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르타를 보고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하고 말씀하신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오빠 라자로가 죽었을 때 찾아오신 예수께 확신에 넘친 신앙고백을 한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성녀 마르타는 요리사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
성인명 | 카타리나(Catheri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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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 3월 9일 |
성인구분 | 성녀 |
신분 | 수도자, 수녀원장 |
활동지역 | 이탈리아 볼로냐(Bologna) |
활동연도 | 1413-1463년 |
소개 | 법률가이자 외교관의 딸이었던 그녀는 데스테의 니콜라스 3세의 궁중 시녀로 일하는 동안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 부친이 사망하자 그녀는 궁중을 떠나 열심한 기도생활을 하다가 후일 글라라 수도회에 들어가 수도자가 되었다. 이때부터 그녀는 그리스도와 사탄의 환시를 보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어느 크리스마스 때 일어난 자신의 체험을 글로 썼다. 아기 예수를 팔에 안은 성모 마리아의 환시였는데, 이 환시는 그 후부터 많은 화가들이 즐겨 그리는 소재가 되었다. 또한 그녀는 시와 회화에 특별한 재능을 보여 화가와 시인으로 인정을 받았다. 1712년에 시성되었으며, 미술가들의 수호성인이다. |
성인명 | 체칠리아(Cecil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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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 11월 22일 |
성인구분 | 성녀 |
신분 | 동정 순교자 |
활동지역 | 이탈리아 |
활동연도 | +230년 |
소개 | 성녀 체칠리아는 로마에서 귀족 가문의 딸로 태어나 크리스찬으로 교육받고 성장하였다. 성녀는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발레리아노라는 로마인과 약혼하였으며 그를 그리스도인으로 개종시켰다. 그 후 발레리아노와 오빠가 순교하자, 성녀 체칠리아 역시 이방 신전에 끌려가서 희생 제물 바치기를 강요당했지만 끝까지 신앙을 지킴으로써 참수 치명하였다. 성녀 체칠리아는 문예부흥기 이후 흔히 비올라나 작은 오르간을 연주하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음악과 음악인들의 수호성인이다. |
성인명 | 안나(An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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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 7월 26일 |
성인구분 | 성녀 |
신분 | 성모의 모친 |
활동지역 | 이스라엘 |
활동연도 | +1세기 |
소개 | 옛 전승에 따르면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는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이다. 성 요아킴은 나자렛에서 태어나 성녀 안나와 결혼하였으나 자식이 없었다. 한 때 그는 광야에서 40일간 기도하며 자식을 기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녀 안나가 아기를 낳으면 하느님께 봉헌하겠다고 약속한 후 어느 날 천사로부터 아기를 낳는다는 전갈을 듣고 마리아를 낳았다고 한다. 이 마리아가 예수의 모친이다. |
성인명 | 바오로(Pau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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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일 | 6월 29일 |
성인구분 | 성인 |
신분 | 사도, 순교자 |
활동지역 | 시리아, 터키 |
활동연도 | ?-+67년경 |
소개 | 베냐민 지파의 유대인이자 로마 시민권을 가졌던 사도 바오로는 당대 뛰어난 학자이자 열심한 유대교 전통의 수호자로서 그리스도교 박해에 앞장섰다. 그러나 다마스쿠스에서 주님을 체험한 후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이후 45년경부터 성 바오로는 세 차례의 전교여행을 통하여 복음전파에 온 삶을 바쳤으며 또한 훌륭한 저술가로서 많은 서간들을 남겨 오늘날에도 그의 글을 성경에서 볼 수 있다. 성 바오로의 뜨거운 신앙의 열정과 복음전파의 일꾼으로서의 그의 삶은 성 베드로와 더불어 교회를 떠받치는 두 기둥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